#초한지
유방의 본 이름은 유계인데, 백중숙계 할때 그 계 자를 쓴다. 유씨 집 막내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서에서 아버지는 유태공이라 부르고 어머니는 유온이라 부르는데 이것도 그냥 유씨 어르신, 유씨댁 안주인 정도지 실제 이름은 아니다. 유씨집 막내 아들은 이름도 없이 자라 중국 최초 평민 천자가 되었다.
유방은 패현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룬 것 없이 술이나 마시고 그저 놀고 지냈다. 왜인지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했다고 하는데 동네 술집에서는 유방이 워낙 손님을 끌고 다니니 유방 본인 외상값 정도는 알아서들 탕감해줬다고한다.
전한삼걸(후대가 평가하는 전한의 최고 공신 3인) 중 으뜸 소하는 당시 진나라에서 읍면서기 같은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유방이 어떤 사람이냐 묻자
>유계(유방)는 원래 큰소리를 자주 치나 이루어지는 일은 드뭅니다.
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하루는 초대도 받지 않은 부잣집 여씨 집들이에 찾아가 '내 축의금은 만냥이요.' 하고는 상석에 그냥 앉아버렸다. 사서에는 소하를 포함해 다른 이들이 눈치를 줘도 신경도 쓰지 않고 귀빈 접대를 잘만 받았다고 한다. 잔치가 끝날 즈음 집안의 어른 '여공'은 유계에게 자기 큰 딸 '여치'와 혼인하지 않겠냐고 묻고 나중에는 거의 애원했다. 뜬금없는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하고 난리가 났는데 여공이 우기다시피해 결국 맺어졌다. 그 집 엄마는 억울하고 원통해서 펑펑 울었다. 결과적으로 여공의 배팅은 성공했다. 그 집 큰 딸은 후에 여태후가 되어 유방 사후에는 잠시나마 사실상 황제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놈팽이로 지내다 만리장성 노역에 인솔자 격으로 차출되어 길을 떠났는데, 당시 나라 국법이 매서워서 하루 늦으면 태형 이틀 늦으면 사형 이런 식이었다. 대충 술이나 마시며 적당히 가다보니 여정 중간에 정시 도착은 택도 없는 일이 되었고 유방은 그 길로 '안할란다' 선언 후 산으로 도망갔다. 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유방 곁에 남았다.
그러다 진시황이 죽었다. 오광과 진승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반란을 일으키고 중국 전역에 대반란시대를 열었다. 유계도 이 무렵 패현에서 연락을 받는다. '우리도 반란 하려고 하는데 너가 와서 대장해라.' 막상 돌아가보니 패현의 현령이 겁을 집어먹고 성문을 꽁꽁 잠가버렸다. 유방은 '현령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편지를 화살로 쏘아넘겨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리하여 현령은 죽었다. 동네 건달 유방은 패공이 되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의 순행 행렬을 본 젊은 유방은 주제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다.
> 사내로 태어났으면 저 정도는 해봐야 하는것 아닌가.
유방은 기원전 200년대 사람이다. 황제를 보고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못해도 2000년은 앞선 생각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초나라 항우였다. 둘은 의형제였다가 원수로 관계를 마무리했다. 항우는 살면서 70번을 싸워 모조리 다 이겼고, 끝에 끝에 마지막 해하에서 딱 한 번 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죽었다. 유방은 황제가 되었다.
초한지는 결국 못난이 유방이 어떻게 그 잘난 항우를 이겼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또 한신 같은 대단한 천재들이 유방에게 쓰임당하다가 결국 죽임 당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유방, 한신, 소하, 장량 같은 사람의 일생에 대해 좀 적어보려고 한다.